19-21면/장애인예술가 시리즈1/비올라 연주자 백승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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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9-30 13:18 조회1,0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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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어머니가 키운 장애인예술가 백승희를 말하다
-하트하트재단에서 장애인식개선 활동 강사 활동 3년후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원으로 성장
글=정향미 사진=국민엔젤스앙상블
자녀가 언제 문화예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나요?
초등학교 3학년까지도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여 항상 복도에서 속옷을 들고 서성 거려야했던 시절인데 교감선생님의 권유로 특수학급 보조교사가 생기던 첫해 아들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특수학급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이 안정적이 되었으니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라는 말씀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행동치료를 공부 하던 중 이웃집 형의 피아노 교사를 소개받아 피아노를 사들이고 피아노 레슨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었으며 말하는 것을 싫어하여 하루종일 엄마라는 단어도 안 하고 지나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 피아노에 도전할 때만 해도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 소근육 운동으로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하는 피아노 건반을 치다 보면 연필을 잡고 이름이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아이 인지라 피아노 레슨 시작한지 1년여는 레슨이 아니라 선생님과 친해지는 것과 피아노와 친해지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악보를 보기 전에 피아노 건반의 도 위치를 찾는데만 수백번~~못해도 천번 이상은 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커다란 전지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서 벽에 붙여서 빨간 색의 도와 피아노 도 위치에 빨간색의 도 글자를 붙여 놓고 하루에도 수백번 반복하여 이게 도야 하며 전지 위에 도를 짚어주고 피아노 도 건반을 두드리며 소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처음엔 귀찮다며 짜증을 내던 아이가 피아노 소리에 반응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스스로 도 하며 피아노를 두드리더니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같은 방법으로 레 미 ~~ 를 배우는 시간이 짧아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어떤 교육을 해오셨나요?
학교다닐 때
학교 생활은 대부분 특수학급에서 지내다 하교하게 되어 특수학급에 있는 동안 소근육을 키워 주는데 노력하였고 컴퓨터 자판이 열손가락을 사용하여야 함으로 한글자판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으며 하교 후에는 피아노
연습에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초등학교를 보냈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제법 피아노를 치게 되었으며 중학교 2학년 쯤인가? 조금 더 섬세한 바이올린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렵던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였으니 바이올린은 쉬울거란 생각은 엄마의 착각이었습니다
바이올린 역시 새로운 도전이었고 악보를 빨리 빨리 읽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고 바이올린 교사의 활이 부러져 나갈 정도의 체벌에 견딜 수가 없어 악기를 접기도 하였지만 우리 아이를 잘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또다시 시작하게 됐죠. 그 분은 비올라 전공선생님이셨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바이올린 보다는 비올라가 더 잘 맞을 것 같다 하여 비올라로 악기를 바꾸었더니 아이가 훨씬 더 악기에 집중하며 연습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학교 생활 중 오전에는 학교에 오후에는 연습실 오케스트라 합주 등등 악기 연습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곡남중학교 졸업식장에서는 교감선생님의 제의로 승희가 “소녀의 기도” 피아노 연주를 하여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제 집에서 100미터 거리 인지라 학부모들이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승희에 대해 수시로 보아 왔기 때문에 승희의 피아노 실력을 상상도 못했으니 저 아이가 그 아이 맞느냐며 여기 저기서 수근 수근 거리며 눈물을 훔치는 학부모님들도 계시고, 수고하였다며 저를 꼭 끌어 안아 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날 저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습니다. 저와 승희의 사진이 신문에도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인천 수영 대표선수 생활을 하기도 하여 전국 장애인 체전에서 동메달 2개를 받아 오기도 하였고 인천수영대회에서 MVP 상을 연속 2년을 받아 미추홀학교 교장실을 장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졸업후
비올라를 시작한지 2년만에 서울에 있는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 입단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2~3번씩 서울 송파까지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학교를 찾아가며 장애인식 개선 교육에도 3년을 참여하였습니다.
승희가 다니는 주안장로교회에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고자 전공자만 입단할 수 있다고 하여 상상도 못했던 백석예술대학교 관현악과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우리 주님은 승희에게 아니 엄마에게 음악적으로 더 필요하시다며 6개월을 준비끝에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고 2학년 여름 주안장로교회 오케스트라에도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비 장애인들 틈에서 매주 예배 시간에 찬양을 올려 드리는 일은 정말 가슴 벅차 올랐고 주안교회 사랑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다들 기뻐해 주셨습니다.
장애인 예술가가 된 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술가가 된 뒤 달라진 것은 첫째로 나도 돈을 번다며 그 좋아하는 통닭을 사 달라고 하여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던게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오케스트라만 10년을 하던 아이가 작은 앙상블에서 자기 소리를 들어야 하고 기다렸다 다시 합류도 하고 다른 친구 멜로디에 내 소리는 작아져야하고 내 멜로디에는 소리가 커져야 한다는 것 등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져 머리를 쓰기 시작하게 되어 아이는 힘들겠지만 엄마는 너무 행복합니다.
나도 회사에 다닌다며 자존감이 높아졌으며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고 행복한
미소를 볼수 있어 가족 모두가 행복한 나날이 되었습니다.
자녀의 장점에 대해
승희의 장점 많지요
건장한 29세 나이에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OK 하는 아들이 얼마나 될까요?
엄마의 표정만으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아들이 얼마나 될까요?
순수하고 착하고 거짓말 할 줄 모르는 이 아이를 장점이라고만 하기에는 . . .
부모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장점이지요
뒤따라오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후배 부모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제가 시행착오를 겪었던게 한가지 있는데 워낙 무기력하고 스스로 할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여 아이가 시작하기 전에 기다려 주지 못하고 엄마가 다 해 주었던것들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먼저 방어를 하였던 일들이 아이에게는 호기심 유발을 방해하게 되어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게 한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위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며 교육에 임하시기를 권하고 싶어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달란트가 있으니 아무리 부족하다고 생각이 될지라도 그 무언가는 잘 하는게 꼭 있으니 그 무언가를 발견하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발전시켜 나가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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